I.
아이들이 도마뱀을 잡는다.
재빠르게 풀밭으로 도망가는 놈을
막대기로 쑤시면서 풀 밖으로 내몬다
도망가는 놈의 한 녀석이 꼬리를 밟았다
도마뱀은 잠시 몸을 비틀다가
제 꼬리를 남겨둔 채 다시 풀밭으로 달아났다
II.
1.
그이가 떠난다 한다
2.
아침 식탁 위로 어머니가
사진을 내 놓았다
R.O.T.C였다는 그는
대기업 연구원이란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차소리처럼 지나가고
늦기 전에 결혼 해야 한다는
서늘한 스물 일곱
거리를 씹으며 서있는 플라타너스 사이로
배고픔도 잊은 출근길은
걸널목의 기다림으로 남아
무단 횡단의 충동으로 이어지는
끈적한 여름날
아무도 없을 밤차를 타고
그이가 포항으로 내려간단다
3.
무엇이든 공유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손수건 위로 증발해버릴 땀방울처럼
딱겨지고 함께했던
지난 육년의 거리는
보도블럭 밑으로 묻혀버렸다
4.
자주 만나던 대학로 문예회관 앞에서
북적대는 젊은이들과 함께
그이를 기다렸다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는 사람이 되어
서로가 주고받는
믿음의 언어의 일렁임 속에
그이의 담배 연기는
나무를 타고 하늘로 흩어졌다
5.
아무 말없이 시간은
깔려오는 어둠에 맞춰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예전처럼 그이는
커피 값을 계산하고
멍청하게 서 있던 버스 정거장에서
한 번의 악수를 남기고 헤어졌다
입대하기 전날처럼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길어야 이년 육개월이라는 말도
그이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6.
필름처럼 감기는
기억의 스크린 위로
깊게 휘몰아치는 가슴의 소용도리
그이가 떠나고 있다
별대신 빛나는 가로등처럼
이젠 기다림도
별을 잊어버린
서울의 하늘처럼 내겐
빛나는 것 하나도 없을 것이다
7.
금속 마찰음과 함께
그이가 떠나고 있다
문익환 목사의 노제 때
노동자의 삶에 대해 말하며
심각하게 말하던 포항행
그이가 떠나고 있다
그리고
다니던 대학도 나에 대한 미련도
그이의 땀방울 속 묻혀져
용광로 위로 증발해버릴 것이다
III.
꿈틀거리며 남겨진 꼬리를 한 녀석이
잡는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다시 풀밭을 뒤진다
다른 도마뱀이 놀라 튀어나온다
또 한 녀석이 도망가는 도마뱀의 꼬리를 잡는다
몇 번을 바둥거리던 도마뱀은
제 꼬리를 떼어놓고 달아난다. 녀석들은
도망가는 도마뱀의 뒤통수를 보며
뭐가 좋은지 웃고있다
*** 꽤 오랫동안 고민했던 시였는데...1996년 시같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