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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지에 대한 기억 1
    이전의 詩 2010. 9. 19. 18:26

         그해 가을,
         그 선생의 얼굴, 눈빛, 목소리
         그가 휘두른 몽둥이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잊을 수 없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학교 옆 공터에서 원을 그리고 서 있다 
    원 안엔 두 녀석이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주먹을 쥐고 있다
    갑자기 한 녀석이 주먹을 휘두르며 움직인다 
    그런데 녀석이 주먹을 휘두른 상대는 맞선 녀석이 아니라
    옆에서 가방을 들고 얘기하던 녀석이다
    갑작스럽게 맞아 넘어진 녀석을 올라탄 그 녀석은 옆에 있던 돌로 두 번 찍고
    품에 숨겼던 칼을 휘두르며 자신의 가방을 들고 도망쳤다

    다음 날 선생은 아침부터
    때린 녀석과 맞은 녀석을 교탁 앞에 세우고 아이들 앞에서 몽둥이를 휘두른다
    싸운 녀석을 때리는 것은 신성한 선생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말과 사건의 과정은 선생에게 중요하지 않다
    결과와 그에 따른 벌을 주는 것이 선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여겼다
    방과 후 때린 녀석과 맞은 녀석에게 선생은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말했다
    맞은 녀석은 어머니를 모셔올 수 없었다
    머리에 난 상처도 친구와 놀다가 넘어진 것이라고 둘러댔다 
    때린 녀석은 곱게 차려입은 엄마와 함께 학교에 왔다
    녀석의 엄마는 교실에서 선생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며 봉투를 선생의 책상에 놓고
    성의를 무시할 수 없던 선생은 녀석의 머리를 웃으며 쓰다듬는다
    다음 날 아침 선생은
    맞은 녀석을 교탁 앞에 세우고 아이들 앞에서 다시 몽둥이를 휘두른다
    선생의 지시를 어긴 녀석을 때리는 것이 선생의 의무라고 여겼다
    그날부터 맞은 녀석은 남아서 한 달 동안 매일 화장실 청소를 했다

        벌써 이십하고 오 년이 흘렀다
        지금 봉투를 들고 학교에 찾아가는 녀석은
        때린 녀석일까? 맞은 녀석일까?
        지금 봉투를 받고 웃으며 선생질하는 녀석은
        맞은 녀석일까? 때린 녀석일까?



    *** 2006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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