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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내에게 (황지우)
    言寺의 풍경 2010. 9. 20. 21:52
    늙은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망,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에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하는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담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ㅇ벗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같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서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하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2010년 3월 6일
    처가 황지우의 <늙은 아내에게>라는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아 시인이고 싶다. 시를 쓰며 울고 그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고 웃을 수 있는
    아 그런 시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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