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寺의 풍경

비오는 날의 인사 (사이토우 마리코)

빈약한장소는없다 2010. 9. 19. 19:07
비 오는 날의 인사
      -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이 되지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나이를 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잊은 채로 당신의 나라에 와 버렸고
잊은 채로 당신의 학교에까지 와 버렸습니다.
팔짱을 끼고 독수리상을 지나서 좀 왼쪽으로 올라가면
당신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당신의 나이를 넘은 제 삶을
여기에 옮긴 것은 옳았던 것인지

-여기는 윤동주 선배님의 조용한 안식처입니다. 담배 꽁초를 버리지 맙시다.
오늘은 비가 지독하고
팻말은 풀숲 속에 쓰러진 채 비에 젖어 있었지만
후배들은 여기서 담배 따위는 피우고 있지 않아요
여기 올 때마다 조그마한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시인이 시인이라는 것만으로 학살당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라고 일본의 한 뛰어난 여성시인이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저의 어머니의 시대 할머니의 시대입니다
저는 당신의 종점으로부터 걸어왔습니다
언제나 종점으로부터 출발해 왔습니다
이제 폭풍우는 우상을 뒤집어서
저는 당신의 말 앞에 서 있습니다
실현될 때 말은 빠릅니다
빛처럼 실현될 때
말은 운명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지상에서
녹지 않는 별의
그 딱딱한 눈동자의 빛에 비추면서
저의 부끄러움과 당신의 부끄러움은
서로 얼굴을 맞을 수 있는 것인가요

비가 그치면
<사람이 되지>라 대답한
수없는 당신의 동생들이
뛰어다니는 이 대학가 상공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최루가스가 자욱하게 있습니다 


***2004년 9월 24일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충격이란?.... 이것은 번역시가 아니라 한국어로 쓴 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시를 좋아하고 쓴다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러웠는지....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미안함이란...

하지만, 이 시를 읽는 순간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표현이나 시를 이끌어가는 힘이 참 많은 생각과 글을 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 시를 맛깔스럽게 잘 썼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 속에 이 시인의 진실성이 느껴질 때 시는 참으로 강한 힘을 갖게됩니다.
그 강한 힘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타인의 힘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실현될 때 말은 빠릅니다/ 빛처럼 실현될 때/ 말은 운명입니다"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말 속에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아주 강하게 시를 사랑하게 합니다.
언어가 운명의 둘레를 휘감아 돌 때 내 언어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이 시를 읽었습니다.

<언사의  풍경소리>의 첫 작품으로 이 시를 올리는 것은 시를  생각하는 태도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더 갖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윤동주의 시를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