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서울의 예수》
빈약한장소는없다
2010. 10. 13. 08:27
정호승의 시집은 서점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산 첫 책이다.
그 책은 《서울의 예수》가 아닌 《새벽편지》였다.
하지만 가장 많이 읽고 주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은 《서울의 예수》다.
시인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서울의 예수》에서 시인이 바라본 세계는 그리 밝지 않다. 1980년대 초의 서울은 당연히 밝은 수 없는 사회였다.
하지만 그 때에서 여전히 서울은 희망적인 도시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인에게 서울은 희망도 절망이고 절망도 절망이고 슬픔도 슬픔이고 기쁨도 슬픔이다.
시인에게 가장 큰 희망은 기다림이다. 그의 사랑은 기다림이다. 그의 희망은 기다림이다.
사회의 온갖 모순과 잘못됨 속에서도 시인은 기다린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조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세상을 조금 더 앞을 바라보고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곧 허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 기다림의 끝은 결핍이고 허무함이고 더 긴 기다림이다.
<그날밤><소월로에서><서울의 예수><서울복음2><서울에 살기 위하여>등등 시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가슴 밑바닥에서 가라앉는 분노, 애정, 답답함이다. 종교는 구원이 아닌 절망을 더 절망스럽게 하는 것으로 변했다.
예수가 세상에 할 것이 없는 사회를 시인은 보고 있다.
시인은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정호승을 전통적 정서를 가장 잘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서울의 예수》중에 <이별노래><또 기다리는 편지>에 나타난 정서는 <가시리><진달래꽃><송인> 등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전통적 이별의 정서 혹은 사랑의 정서와 잘 이어져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빨간 줄을 그으며 시를 해부하고 전통적인 무엇과 비슷한 정서다라는 식으로 시를 이해하면 감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각자의 마음으로 시를 읽고 느껴야 가장 시를 잘 이해하는 방법이다. 시어 하나하나를 행 하나하나를 찢어서 그 상징성을, 은유를 찾아내는 일은 시를 하나의 완성된 구조로 이해하고 느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시인은 <또 기다리는 편지>에서 사랑을 새벽보다 깊은 새벽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엔 이유가 있지 않고 공감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공감하면 자신의 사랑 표현이 더 나아질 것이고 공감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면 된다.
시인이 <이별노래>에서 떠나는 사람을 잡으려는 애절한 마음이 <진달래꽃>의 마지막 연과 연결된다느니 보다 가요 가사 아닌가? 라고 하거나 떠난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청승맞다고 느끼는 것이 더 시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은 시의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시는 현실을 슬퍼하고, 비판하고, 기뻐하고, 괴롭다고 가슴을 치기도 하고 욕도 한다.
그래서 시인 먼저 생각하고 먼저 행동하고 먼저 표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시인 중에 먼저 생각하고 먼저 표현한 사람들은 많지만 먼저 행동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름다운 시 한 줄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읽으려하고 현실은 온 몸으로 부딪히며 시를 쓰는 시인이 그리운 시대이다.
*** 결국 시의 본질은 보편성이다.
보편적 정서, 보편적 생각, 보편적 사회를 담은 글을 새로운 시각으로 표현, 그 시가 멋진 시다.
시를 읽으면서 눈에 그림이 그려지고 감정이 일렁이는 시, 그런 시가 좋은 시다.
눈에 그려지는 시를 흔히 회화적인 시라고 하고
마음의 감정이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시를 내재율이 강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난 개인적으로 내재율이 강한 시를 좋아한다.